티벳 땅밟기 사역에 대하여
1998.12. 2* - 1999. 1. * 7박 8일 (정확한 날짜기 기억나지 않음)
어려움 : 고산병 재정 그렇지만 고산병중에서도 일하신 하나님
교훈 : 교회에 보고하고 기도부탁하고 협력관계로 가는 것은 매우 중요
감흥과 감격 : 찬양과 전도하지않고 기도만 하기록 계획했었던 일정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다르게 바꾸셔서 거의 찬양만 했다 혼자서, 차 안에서도
그리고 절에서도 마치 연주회처럼 환영 받으면서
그 당시까지만 해도 모교회의 어른들이 선교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고 그 당시는 모교회 뿐 아니라 부산지역에는 목사님 외에는 선교사라는 것을 생각 조차 하지 않을 때였다.
그래서 교회에 보고하지 않고 기도 부탁도 하지 않고 출발하였습니다.
경유지에서 북경공항과 상하이 호텔에서
티벳 공항에 도착했을 때의 아픔
티벳 공항이 절인지 공항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불상그림이 크게 그려져 있어서 너무 마음이 아팠고 호텔 까지 갈 때에도 벌거벗은 산의 큰 바위에 불상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또 마음이 아팠던 것이 산들이 모두 벌거벗어 있었습니다. 나무가 하나도 보이지 않고 황토색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하나님께 예배 드리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곳은 산 마저 이렇게 황량해 지는 구나라는 것을 다시 그리고 더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다음에 정말 마음 아팠던 것은 거리의 어린이아 구걸하시는 어른들이었습니다.
가기전 그곳에 길거리에서 돈을 주면 많은 사람들이 따라와서 감당하기 힘들어 그렇게 하지 않기로 하고 갔었습니다. 특별히 회계의 책임을 맡은 저는 더 조심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한 어린이가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이들이 얼마 보이지 않아서 서너명의 아이에게 함께 결정한 후에 동전을 주었는지 사탕을 주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주는 저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아이이 손이 눈에 들어왔었습니다. 손에 때 경상도 표현으로 때 꼬작물이 아니고 때 딱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정말 마음이 아팠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가니 어른들이 동냥을 하는데 그것을 절에 다 바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각에는 절에 시주를 많이 해야 다시 태어나 절의 승려가 되어 잘먹고 잘 살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거짓과 비 진리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이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차 안에서는 자유 시간이었는데 저는 계속 찬양을 드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하나님께서 꼭 필요해서 하게 하신 것 같았습니다. 주 찬양이 문들아 머리들어라 ... 왕께 만세 왕께 만세 였습니다. 참조로 장기적 선교사님들의 안전을 위하여 찬양을 하지 않기로 하였고 우리 자체로
예배 드릴 때만 조용히 찬양하기로 하였고 찬양리더는 기타를 칠줄 아는 다른 형제가 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밖에서는 기타를 치지 않으므로 저의 집이나 사무실에서 본 사람 외에게는 제가 기타를 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조금씩 아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호텔에 도착해서
음식에 대하여
그곳 음식을 모르는 우리는 어는 네팔의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었는데
해외 생활을 처음 해본 저와 다른 팀들도 다들 그 음식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가지고 간 라면을 호텔에서 남비같을 것을 빌려서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사역에 대하여
티벳은 해발 약 7000 미터의 고산 지역이라 그곳에 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고산병에 걸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희 일행들은 첫날을 사역하지 않기로 하였었습니다.
그리고 다들 첫날을 힘들어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부탁을 많이 하고 온 자매 한명은 건강하였습니다.
저와 다른 자매님 한명이 굉장히 심하게 아팠습니다.
머리가 너무 많이 아프니 속에서 물까지 다 나왔습니다. 그리고 떠있는 상태였습니다. 걸음도
조심해서 천천히 겨우 걸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둘째날이 되어 다른 팀들은 땅밟기 사역을 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저와 그 자매님은 너무 심하게 아파서 팀들은 우리 두 사람을 남겨 두고 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갑자기 너무 억울하였습니다.
그래서 누워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누워 있는 것 너무 억울해요. 저를 이렇게 돌아가지 않도록 도와 주세요
그리고 나도 같이 가고 싶다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자 하는 수 없이 저를 데려 가기로 결정하자 그 자매님도 저와 같이 출발하였습니다.
그런데 너무 힘들어서 제가 제일 뒤쳐져서 따라 갔습니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이 들었지만 성령께 도움을 요청하면 한발자욱씩 한발자욱씩
걸었습니다.
어는 시점이 되니 제가 제일(?!) 힘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안타가운 것은 우리를 가이드 하였던 티벳인이 저보다 나이가 한 살 작았는데
저보다 20살은 나이 많은 아저씨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곳 생활에 익숙한 가이드는 처음에는 건강 했지만 어느 시점이 되니 제일(?) 힘들어
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곳 환경에 대해 또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느 절에 들어가서 이사를 하였습니다. 일하시는 분들이 저희들을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기타를 메고 있는 형제를 향하여 BODY LANGUGE 로 말했습니다. 그 것 비파처럼 어깨근처 팔과 옆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치는 것이나고 그래서 저희들은 바디 랭귀지로 아니라고 이렇게 친다고 배와 아래로 왔다 갔다 하면서 친다고 ...
그러자 해 보라고 권유 하였습니다. 다들 머뭇거렸습니다. 우리의 계획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지만 제가 하자고 하였습니다. 다른 것 하지 말고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부르면서 축복하자고 그리고 그들은 한국말 모르기 때문에 찬송인지 유행가인지 모르고 단지 그들의 영만 알아 들을 것이라고....
다들 동의하고 그 형제가 기타를 치고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권과 거룩한 팔을 뻗어서
그들을 향햐여 하나님의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축복하면서 찬양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인사하고 다음 절 더 깊은 곳으로 갔습니다.
저는 구경을 하면서도 거의 찬양을 흥얼 거리면서 또는 기도하면서 다녔습니다. 다른 팀들은 주로 구경을 하거나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절인지 기억이 나지 않은데 그리고 어떻게 시작했는지 모르는데 높은 곳에 서서
함께 소리 내어서 찬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무기는 한국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화음을 넣어서 함께 찬양을 하였는데 많은 분들이 연주를 하는줄 아시고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을 사진을 찍으시기도 하셨습니다.
1월 1일 이라 많은 나라에서 관광객들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절에서 왕께 만세를 찬양하고 선포하는 것은 너무나 큰 감격이었스니다. 그것도 사람들의 환영 속에서 아무도 우리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한국말이었거든요,,,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찬양인도를 맡은 형제님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거의 저를 통하여 일하시고 저를 통하여 찬양을 리더해 나가셨습니다. 저같이 부족한 사람을 통해서라도 찬양을 받으시기로 결정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찬양합니다.
그렇게 힘들게 출발하고 아팠던 것을 하나님께서 역전을 시키셨습니다.
대한민국 절에서는 큰소리로 찬양을 해 보려고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 다.
혼자서 다른 사람이 듣지 않고 영으로만 알도록 흥얼거리는 것만 해 왔고 범어사에서 하나 님께서 외치라고 해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이니라다 구원하심 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 되신 예수그리스도께 있도다 ...”몇번 반복하고 두 형제 가 따라하고 도망친 기억만 있습니다. 제가 참 어려워하는 스타일의 사역인데 하나님께서 강권하셔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였습니다. 더 자세한 것은 다음에
그 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비록 7박 8일 이었지만 잊지 못하는 선교여행이었으며 티벳 영혼에 대해 아파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참으로 많이 배워 온 선교 여행이었습니다.
티벳의 또 다른 풍습 과 거룩한 분노에 대하여
첫날밤 신부가 절의 승려와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신랑과 지낸다는 것입니다.L
그 당시까지만 해도 독수리 제사가 있다고 했는데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거룩한 분노
그들의 거짓 메시지로 인해 구걸하여서 절에 다 바치게 하고 절에는 큰 불상의 허리를 금으로 만든 것에 대해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힘이 있으면 불상을 깨뜨리고 그 금을 훔쳐서라도 티벳 주민들에게 다시 나누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능력이 있나요 그리고 그 것은 또한 하나님 방법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의 의로운 분노를 들으신 것으로 압니다. )
쓰러져 가면서 1000 배를 아저씨에 대한 아픔과 분노
다리를 휘청거리면서 쓰러져 가면서 1000배를 하는 어느 아저씨를 보면서 또 마음이 아팠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해서라도 다음에라도 승려로 태어나 편안하게 살고 싶은 거짓에 속고 있는 것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사는 그들이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길이 구원을 이룰 수 없고 몸만 상하게 되는데..... 시간만 낭비하게 되는데....
고행의 길을 따라가고 잘못된 것을 가르치는 거짓과 술수가 미워졌었습니다.
우리 예수님님만 믿으면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한 꼴을 얻게 되는 데......
살진 승려들과 절에 있는 큰 개들에 대하여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히말라야산의 개 같이 보였는데 멋있게 생겼는데 주민들은 그렇게 배고픔에 허덕이는데 승려들은 그것을 잡아먹고 자기들만 살찌고 거짓 메시지를 가리침으로 계속적으로 악을 자행하는 것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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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달라이 라마도 승려도 다 잘못된 것을 배워온 안타까운 구원받아야 하는 대상인 것을............
다시 한번 선포합니다.
달라이라마도 승려도 여호와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나님의 피조물인 것을 ....
티벳이 여호와께 속하였고 예수 그리스께 속하였음을......
이 모두를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지금도 일하시고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랑을 찬양합니다.
돌아오면서 다른 감흥
상하이 식당에 갔습니다. 둥근 식탁에 그릇들을 돌려 가면서 먹을 수 있어서 참으로 편리하였습니다. 그러한 저에게 드는 생각은 한국도 식탁이 네모가 아니라 둥글어서 이렇게 그릇을 돌려가면서 먹을 수 있으면 권위 주위적이 생각이 조금은 사라지고 좋을 것 같다는 생각 이 들었습니다.
그 후 돌아와서의 계속적인 티벳에 대한 기도와 예배
이글에 대한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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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대로출판사 여리고7일저작자 김미란 마리스더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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